경남 창원에서 활동 중인 박숙희 시인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 사업으로 시집 『사랑은 짧은 기억에 머문다』를 창연출판사에서 창연시선 39번으로 펴냈다. 시인의 말과 1부에는 「매물도」 외 시 16편, 2부에는 「새」 외 시 16편, 3부에는 「문자메시지·1」 외 시 11편, 4부에는 「바람이 분다」 외 시 16편, 5부에는 「하이웨이」 외 시 16편 등 총 시 80편이 실려있다. 특히 이 시집에는 박숙희 시인이 직접 그린 유화 30여 점이 함께 실려 있다. 시와 그림은 서로의 여백을 메우며, 색채와 문장이 교차하는 또 하나의 평행선을 이룬다. 언어가 닿지 못한 감정은 색으로 번지고, 그림이 담지 못한 사유는 시로 깊어진다. 결국 이 시집은 사랑을 오래 붙들기보다, 사라지기 직전의 빛으로 남겨두려는 시인의 태도에 관한 기록이다. 짧은 기억 속에 머무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오래 우리를 흔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 빛의 스펙트럼으로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
박숙희 시학의 중심에는 육체의 고통을 우주적 빛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헌신이 있다. 섬이 산달을 맞이하고 몸속에서 강물 소리를 듣는 그 경이로운 순간은, 아픔의 임계점을 넘어 새로운 생명을 밀어 올리는 시인의 환희를 보여준다. “몸살하는 봄을 끓였다”라는 고백은 자신의 생을 뜨겁게 달구어 낸 사랑의 증거이다. 육체의 고열(高熱)을 통과하며 슬픔의 찌꺼기는 증발하고, 그 자리에는 무지개색 빛의 정동(Affect)만이 찬란한 무늬로 남았다.
그녀의 가슴 안에서 묵묵히 발효된 시의 씨앗들은 이제 민들레 홀씨가 되어 경계를 허물고 도약한다. 시인의 방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낯선 풍경 속으로 흩어지는 그 여린 입자들은, 시인이 세상에 보내는 가장 따뜻한 초대장이다. 자신의 상처를 보편적인 빛으로 환원시켜 우리 모두를 위로하겠다는 다정한 약속이다. 바람과 악수할 수 없던 옛 안타까움은 이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환한 빛의 스펙트럼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문다. 이제 시인은 “아무 이유 없이 바람이 되어 웃는” 자유롭고 맑은 영혼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침묵하는 신의 곁에서 시인은 묵묵히 ‘시 밥’을 짓는다. 누구도 정답을 일러주지 않는 고독한 삶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끓여 따뜻하고 향기로운 시의 양식으로 내어놓는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가 곧 시 밥을 짓는 일이라 말하는 시인의 뒷모습은, 지극한 평범함 속에 감춰진 거룩한 성자의 그것과 닮아있다.
시 밥을 짓는 세상의 한복판에 서 있는 박숙희 시인의 앞날에 눈부신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고통의 갯벌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발걸음이 앞으로 더 넓은 빛의 지도를 그려내며, 한국 시단의 귀한 밀알로 발아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 이선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