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짧은 기억에 머문다

박숙희/창연시선
출간일
2025년 12월 31일
정가
12,000원
분야
시 · 창연시선
판형
130 * 210 * 8 mm
페이지
136쪽
ISBN
9791194987239

경남 창원에서 활동 중인 박숙희 시인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 사업으로 시집 『사랑은 짧은 기억에 머문다』를 창연출판사에서 창연시선 39번으로 펴냈다. 시인의 말과 1부에는 「매물도」 외 시 16편, 2부에는 「새」 외 시 16편, 3부에는 「문자메시지·1」 외 시 11편, 4부에는 「바람이 분다」 외 시 16편, 5부에는 「하이웨이」 외 시 16편 등 총 시 80편이 실려있다. 특히 이 시집에는 박숙희 시인이 직접 그린 유화 30여 점이 함께 실려 있다. 시와 그림은 서로의 여백을 메우며, 색채와 문장이 교차하는 또 하나의 평행선을 이룬다. 언어가 닿지 못한 감정은 색으로 번지고, 그림이 담지 못한 사유는 시로 깊어진다. 결국 이 시집은 사랑을 오래 붙들기보다, 사라지기 직전의 빛으로 남겨두려는 시인의 태도에 관한 기록이다. 짧은 기억 속에 머무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오래 우리를 흔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 빛의 스펙트럼으로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

박숙희 시학의 중심에는 육체의 고통을 우주적 빛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헌신이 있다. 섬이 산달을 맞이하고 몸속에서 강물 소리를 듣는 그 경이로운 순간은, 아픔의 임계점을 넘어 새로운 생명을 밀어 올리는 시인의 환희를 보여준다. “몸살하는 봄을 끓였다”라는 고백은 자신의 생을 뜨겁게 달구어 낸 사랑의 증거이다. 육체의 고열(高熱)을 통과하며 슬픔의 찌꺼기는 증발하고, 그 자리에는 무지개색 빛의 정동(Affect)만이 찬란한 무늬로 남았다.

그녀의 가슴 안에서 묵묵히 발효된 시의 씨앗들은 이제 민들레 홀씨가 되어 경계를 허물고 도약한다. 시인의 방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낯선 풍경 속으로 흩어지는 그 여린 입자들은, 시인이 세상에 보내는 가장 따뜻한 초대장이다. 자신의 상처를 보편적인 빛으로 환원시켜 우리 모두를 위로하겠다는 다정한 약속이다. 바람과 악수할 수 없던 옛 안타까움은 이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환한 빛의 스펙트럼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문다. 이제 시인은 “아무 이유 없이 바람이 되어 웃는” 자유롭고 맑은 영혼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침묵하는 신의 곁에서 시인은 묵묵히 ‘시 밥’을 짓는다. 누구도 정답을 일러주지 않는 고독한 삶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끓여 따뜻하고 향기로운 시의 양식으로 내어놓는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가 곧 시 밥을 짓는 일이라 말하는 시인의 뒷모습은, 지극한 평범함 속에 감춰진 거룩한 성자의 그것과 닮아있다.

시 밥을 짓는 세상의 한복판에 서 있는 박숙희 시인의 앞날에 눈부신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고통의 갯벌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발걸음이 앞으로 더 넓은 빛의 지도를 그려내며, 한국 시단의 귀한 밀알로 발아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 이선애 수필가

목차

시인의 말 5

1부
매물도 13
모래 위의 잠 14
정거장 16
그대는 먼 곳의 별 17
오래된 섬 18
나팔꽃 20
그대 21
가을 민들레 그려 놓았다 22
마지막 울음 24
소금 25
칼 26
그는 27
그 여자의 방·45 28
매 29
첫사랑 31
오월애愛 32
영화마을 33

2부
새 37
걸어온 섬 38
안민고개에서 40
실비아 42
슬픈 기억 43
소백산 돌 44
그대에게 45
능소화 46
첫사랑·2 47
시 창작 49
나는 화가 50
도라지꽃·3 52
빈 웃음 쓸어 올리며 54
사랑은 짧은 기억에 머문다 55
일기 56
큰고모네 59
야경 61

3부
문자 메시지·1 65
문자 메시지·2 66
문자 메시지·3 67
문자 메시지·4 68
문자 메시지·5 71
문자 메시지·6 72
문자 메시지·7 74
문자 메시지·8 76
문자 메시지·9 77
문자 메시지·10 78
문자 메시지·11 79
문자 메시지·12 80

4부
바람이 분다 83
그녀는 거친 호흡에 젖가슴이 부어오른다 85
사랑 삼각구도 87
신발 찾기 놀이 하나, 둘, 셋 89
시간풀이·2 91
그리움 92
이별 93
첫 눈 94
그대에게 95
섬, 외도·2 96
바람 그리고 악수 98
야경·2 100
길꽃 102
사랑 한 페이지 103
우물 104
시 105
찻집 ‘행복한 사람들’ 107

5부
하이웨이 111
일기·2 113
하얀 찔레꽃 115
화진포, 가을 116
겨울, 가야마을 117
원동에서 118
고분 벽화 119
이별 121
숲 123
첫 눈 이야기 124
봄날 125
병동에 걸린 초상화 126
눈 먼 사랑·2 128
매물도 끝사랑 129
하늘이여 131
그대는 시 132
어머니·2 133

저자의 말

어떤 저녁에는 사는 일 기웃거리다가 돌아가는 시
무딘 시의 고집 오래된 시어들의 행렬
형용사 나비를 만나고 싶었나 봅니다
은유법 익으면 시의 길 반죽하여
시 밥그릇을 만드는 날에는
시 밥 짓는 세상을 알려주어야 시 밥을 지을 수 있어
시어법 물이 필요한가요
반어법 소금이 필요한가요
시 문 닫는 소리 시 몸이 문 닫는 소리
몸을 굽혀서 어떻게 시 사랑해야 하는지 속삭일 수 없으니
자기 몸을 맡길 수 없으니
이팝꽃 핀 낱장 모습이 시 밥이라고

살아가는 이유는 시 밥을 짓는 일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바람이 되어 웃고 시 밥 짓는 세상에 서 있다

시의 신 한 말씀도 없으셨다